로마 국기 로마, Rome

작지만 큰 나라 바티칸 시국

바티칸 시국 개요

1929년 무솔리니와 교황청과의 협약인 라테란 조약으로 성립된 나라이다. 이전에는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에 교황령의 영토가 존재했으나 대부분은 이탈리아 왕국에 흡수되었었다. 인구는 900여 명 가량 되고 면적은 0.44㎢로 굉장히 작다. 로마 교황이 국가원수로서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나라다. 전 세계의 9억명 가톨릭 신자를 다스리는 나라가 이 바티칸 시국이다. 바티칸에는 스위스 용병 100여 명이 있고 용병의 군복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것이라고 한다.
바티칸 시국의 가장 중심이 되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은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명으로 착공되었고 17세기에 이르러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브라만테 등에 의해 중축된 세계 최대의 성당이다. 성당 안에 들어서면 그 규모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가톨릭의 총본산이라 불리는 이 곳은 “천지창조”로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불굴의 명작들과 함께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등 살면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예술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는 이탈리아 미술의 상징이기도 하다.

  • 주소 : Piazza San Pietro 00120 Città del Vaticano,
  • 입장료 : 산 피에트로 대성당(무료), 광장(무료), 바티칸박물관(16 EUR)
  • 찾아가는 법 : METRO Ottaviano역에서 하차하여 Via Ottaviano로 직진, 도보 5분 소요

TIP!
바티칸 관광시에는 민소매 티, 배꼽티, 짧은스커트, 짧은반바지, 발가락이 나오는 샌들 차림의 복장을 하면 입장이 금지되니 주의하자.

산 피에트로 대성당과 광장

산 피에트로 광장

광장에는 30만명의 군중을 수용할 수 있다. 정면에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입구가 있고 좌, 우측으로 회랑이 반원형의 형태를 띠고 그리스식 건축 양식인 도리아식 원주가 284개 서 있다. 광장의 중앙에는 서기 40년 칼라굴라 황제가 이집트에서 운반한 기원전 1200년에 제작된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베르니니는 거대한 반원형 형태의 회랑의 중심에 이 오벨리스크를 세웠다. 그리고 이 오벨리스크 양쪽에 각각 분수가 있다. 이 광장을 제대로 찍기위해서는 쿠폴라까지 올라가봐야 한다. 광장앞에 있는 도로부터 아주 멋있는 로마 전경을 볼 수 있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

성당 정문의 계단 앞에 성 바오로 상과 성 베드로의 상이 보인다. 산 피에트로 성당의 가장 유명한 조각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Pieta) 상이다. 21세의 미켈란젤로가 만든 조각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무릎 위에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상이다. 당시의 인체비율을 깬 조각으로 논란이 있기도 했다. 다소 젊어 보이는 예수와 젊어 보이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모델이 된 과거의 피에타처럼 비극적인 모습으로 보이지 않고 침착하게 생각에 잠긴듯한 성모 마리아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비극적인 작품의 주제를 초월한 예술성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바티칸 박물관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서 광장 옆길로 돌아가면 바티칸 박물관이 나온다. 이곳은 원래 교황의 바티칸 궁전이었으나 14세기 프랑스 아비뇽 유수가 끝나고 바티칸으로 돌아온 후 박물관이나 미술관, 도서관으로 활용되었다. 박물관의 소장품은 교황이 수집한 것으로 고대 그리스 미술과 진귀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피냐정원(Pigna Courtyard)에는 거대한 청동 솔방울 분수가 있다. 아그리파의 욕실에서 발견된 것이다. 벨 베데레의 뜰은 관람객이 처음으로 지나가는 곳으로 클레멘스 14세와 피우스 6세가 수집한 조각들이 있다. 이 뜰에는 라오콘상이 있는데 콜로세움 근처의 티투스 목욕장 유적에서 발견된 대리석상으로 헬레니즘 시대의 큰 걸작이다.

시스티나 예배당의 미켈란젤로 작품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시에스타 예배당 천장에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작품이 있다. 프레스코화는 회칠을 먼저 한 후 회벽이 마르기 전에 채색하는 기법이다. 벽에 물감이 스며들어 오래도록 변함이 없이 보인다. 미켈란젤로는 혼자 4년간 이 천장화를 그렸다. 그가 그린 3백 장의 예비 드로잉은 밑그림으로 그려져서 천장으로 옮겨졌다. 배경의 세부 묘사 보다는 인물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춰서 그려졌다. 중심 패널에는 천지창조부터 노아의 방주까지 창세기에 나오는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1533년 클레멘스 7세로부터 최후의심판 그림을 그릴 것을 명받았다.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라는 인류의 시작과 끝을 모두 그려낸 예술가이다. 신약성경의 요한계시록을 근거로 상상하여 그렸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을 그리면서 누구에게도 작업과정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약속을 받는다. 그러나 교황은 이를 어기고 보게 된다. 미켈란젤로는 이에 화가 나서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결국, 교황은 사정하여 다시 미켈란젤로를 데려오게 하였다. 미켈란젤로가 처음 최후의 심판을 그렸을 때에는 모두 발가벗은 몸이었으나 교황의 눈에는 성당의 그림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거금을 주고 다른 화가를 고용하여 옷을 입히게 하였다. 결국, 덧칠을 한 셈이다.
이 벽화에는 391명의 인물이 그려졌다. 벽화에 중앙에 있는 예수는 오른손을 들어 심판을 나타내고 왼손은 손짓하여 사람을 부르는 듯하다. 오른쪽 가장 아래에 뱀이 감고 있는 남자는 교황의 의전을 담당하는 자를 그려 넣은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미움을 받아서 제일 안 좋은 역할의 모델이 되어버린 셈이다. 미켈란젤로의 작업하는 모습을 훔쳐봤기 때문이라는 설과 비난을 하고 다녔다는 설이 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

라파엘로는 프레스코를 제작해본 경험이 없는 무명 예술가였다. 이 작품을 그리는 동안 바로 옆방에서는 미켈란젤로가 천장화인 천지창조를 그리고 있었다. 교황 율리우스2세는 철학, 신학, 시학, 법학의 4가지 주제로 장식된 그의 서명실을 꾸미기 위해서 주문했다. 엄격한 구성적 질서를 가지고 있으며 건물의 이미지가 피에트로 대성당의 구조와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건축의 규모나 웅장한 느낌은 초인간적인 가치를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유명인사들을 모델로 한 집단적인 초상화라고 할 수 있다.
정 가운데에 있는 두 명 중 좌측이 플라톤, 우측이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이외에도 소크라테스, 알렉산더 대왕, 에피쿠로스, 피타고라스, 헤라클리토스 등의 인물들이 들어 있다. 초상화들의 표정과 동작 그리고 표정에서 각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로아스터와 프롤레마이오스 사이에 관객을 빤히 바라보는 사람이 라파엘로 자신이다. ‘월리를 찾아라’ 처럼 이 그림에서 라파엘로를 찾는 재미도 괜찮을 것 같다.
  • 완전 좋아요 149
  • 좋아요 32
  • 별로에요 0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어요~
회원님께서 첫 댓글을 달아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