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지중해 여행, 이탈리아 시칠리아를 유영하다
earth rabbit | 2019-07-18 0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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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나의 늦여름은 지중해로 일렁거렸다. 이탈리아의 섬, 시칠리아. 내 전부는 그곳이었다. 마치 짝사랑에 빠진 것처럼 시칠리아 주변을 빙빙 돌며 지중해 곁을 맴돌았다. 햇살의 위로와 바람의 다독임을 벗 삼아 홀로 스무 밤을 지새웠다. 설레게 하였고, 아쉽게 하였고, 즐겁게 해주었다. 시칠리아와 함께여서 더할 나위 없었다.

이 글은 그 해 늦여름을 담은 기록이다. 이탈리아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남긴 온전한 내 청춘. 유럽 지중해 여행. 지중해 곁에 홀로 스무 밤. 나의 길었던 여름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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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으로 기억되는 팔레르모

파스타, 피자밖에 몰랐던 이탈리아 맛에 대한 폭이 팔레르모로 하여금 깊고 넓어졌다. 맛 하나로 여행이 즐거워질 수 있구나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누구나 팔레르모에 오면 그렇게 될 것이다. 시칠리아의 풍부한 햇살을 받고 자란 피스타치오와 레몬을 베이스로 한 디저트를 먹게 된다면 말이다. 시칠리아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까놀리, 그라니따, 젤라또는 헛웃음이 날 수밖에 없을 만큼 맛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먹었던 젤라또는 다 거짓말이었나?"싶었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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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불리 먹고도 여전히 양이 그대로이던 해산물 파스타와 와인을 곁들여도 고작 6.5유로밖에 나오지 않던 로컬의 레스토랑. 빵 위에 세 가지 맛의 젤라또를 얹어주고도 2.5유로밖에 되지 않던 여름철에 꼭 맞는 한 끼 젤라또. 이렇게 맛있고, 이렇게 큰 행복을 주는데 나는 겨우 이 정도의 작은 유로만 건네도 되는 걸까 싶게 행복했던 미식의 일주일. 팔레르모는 맛으로 기억된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게 팔레르모는 늘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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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사랑한 시라쿠사

시라쿠사의 작은 섬, 오르티지아. 그곳에서 사흘을 머물렀다. 둘러본다 한 들 두세 시간 밖에 되지 않을 작은 곳이었지만 나의 사흘을 채우기엔 너무나도 부족했다. 섬을 빙 둘러싼 에메랄드빛 지중해. 반짝반짝 빛나던 두오모 광장. 좁은 골목 사이로 보이던 눈부신 바다. 시라쿠사는 유럽 소도시 여행이라는 타이틀이 가장 걸맞은 도시가 아니었나 싶다. 감성과 휴식을 채우기에 참으로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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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거닐고, 그러다 더워지면 바다에 뛰어들고. 해가 질 무렵이면 바닷가 공원 벤치에 앉아 멍하니 일몰을 바라보았다. 사흘 내내 나의 일정은 그게 다였다. 그럼에도 매일매일이 새로웠고, 늘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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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의 여행이 처음으로 외로웠던 곳 역시 시라쿠사다. 너무 아름다웠기에. 이 아름다움을 혼자 마주하고 있기엔 참으로 아까워서.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고, 공유하고 싶고. "시칠리아에 다시 올 테야. 꼭." 그렇게 마음을 먹게 해준 도시. 나는 꼭 시라쿠사에, 시칠리아에 다시 갈 거야. 그곳의 아름다움을 함께 이야기할 누군가와 함께.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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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아름다운 체팔루

체팔루 기차역에 내리던 순간, 나는 벌써 체팔루에 반했다. 별거 없어 더 귀여웠던 작은 기차역. 철길 넘어 건물 사이로 높게 솟아있는 로까. 그리고 설렘 가득한 사람들의 표정. 모든 것이 좋았고,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신나는 전통음악이 스피커를 통해 길가에 쏟아졌다. 아기자기한 체팔루만의 멋을 품은 숍들이 날 반갑게 맞이했고, 울퉁불퉁 굽이굽이 골목은 마치 미로 속에서 보물을 하나둘씩 찾아가는 듯 즐거움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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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못을 벗어나 체팔루의 자연과 마주했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눈부신 햇살은 처음 보았다. 그렇게 눈부신 바다는 처음 만났다. 당장에라도 나를 태워버릴 듯한 강한 햇빛과 거세게 휘몰아치는 파도가 서로 만나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는 옥색 바다를 선사했다. 마지막 기차 시간이 발목을 붙잡아 차마 그곳에 함께 어우를 수 없었다. 아쉬웠다. 내게 다음이 있다면 체팔루의 저 바다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점점 시칠리아에 반해간다. 모든 도시가 좋고, 모든 것이 아름답다.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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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의 계곡 그리고 아그리젠토

유적을 크게 선호하지 않는 나에게, 팔레르모에서 편도 3시간 버스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곳인지라 사실 아그리젠토행을 망설였다. 그래도 시칠리아에 왔으니, 시칠리아의 가장 큰 유적인 아그리젠토 신전의 계곡은 가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관광객의 마음으로 큰 맘 먹고 아그리젠토행 버스에 탑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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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세기에 지어졌다는 신전의 계곡. 지금은 고작 4개의 신전만이 남았고, 그마저도 제 모습을 지닌 것은 거의 없다. 왕복 6시간의 이동을 이길 만큼 멋진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의 차이가 있겠지만, 유적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아그리젠토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수천 년의 시간을 이겨낸 신전. 그리고 수천 년 전 사람들이 만들어낸 상상력과 이야기를 이렇게 가까이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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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웠다. 정말 놀라웠다. 다른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뭐라고 감탄해야 할지 표현할 수 없어 아쉽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아그리젠토 신전의 계곡에 방문하던 후회는 없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어쩌면 유적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라도, 유적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수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신전의 계곡, 그들의 주인이 현재에게 엄청난 마력을 내뿜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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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거닐다 몬레알레

시칠리아에서 가장 큰 성당인 몬레알레 대성당. 그곳을 방문하기 위해 나선 길이었지만, 주말 미사 시간에 겹쳐 골목에 멀뚱히 내놓이게 되었다. 미사가 끝나기까지 세 시간 남짓, 하는 수 없이 골목을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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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요일 점심. 골목을 마주하고 있는 주방 창틈 사이로 즐거운 가족의 소리와 토마토 냄새, 올리브 냄새가 새어 나왔다. 처음 방문하는 도시, 낯선 골목을 혼자 거닐고 있었지만 외롭거나 무섭지 않았다. 이 집들 가득 수많은 가족들에게서 새어 나오는 행복 덕분에 왠지 모를 따뜻함을 느꼈다. 

시칠리아는 좁은 길 사이로 테라스가 가까이 마주하고 있어 아주 독특한 골목 풍경을 완성한다. 각 도시마다 이 골목 풍경도 다른 멋과 감성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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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의 많은 도시 중 골목 풍경이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을 꼽으라면 바로 몬레알레와 시라쿠사일 것이다. 골목 사이로 보이는 눈부신 지중해가 아름다웠던 시라쿠사. 이탈리아노 삶을 가장 가깝게, 가장 따뜻하게 만나볼 수 있었던 몬레알레. 어느 쪽에 더 로컬에 가깝냐 하면 당연 몬레알레일 것이다. 

몬레알레에 방문하게 된다면 대성당을 둘러보고, 그들의 골목길도 함께 걸어보길 바란다. 다른 대도시와는 또 다른 아주 말랑말랑하고 아기자기한 시칠리아의 삶의 한 편을 볼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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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나와 바다의 심포니, 타오르미나

타오르미나 원형극장, 가장 높은 층에 오르던 순간을 기억한다. 장기 여행의 피곤함. 북적거리는 사람들에 대한 피로감. 그 모든 짜증을 단 한순간에 없애버렸던 놀라운 절경. 나는 그때의 감탄을 오래도록 잊지 못한다. 그리고 내 생의 버킷리스트 한 줄을 더 추가했다. 이곳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꼭 한 번 보고 싶다. 시칠리아에 다시 오게 된다면, 나는 계획을 세우기 가장 앞서 타오르미나 원형극장의 스케줄표를 검토할 것이다. 반드시 꼭. 그 위대한 시간 속에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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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에 한 대뿐인 카타니아행 버스 시간이 붕 떠, 이솔라벨라를 내려다볼 수 있다는 근처 전망대를 찾았다. '예쁘다'라는 뜻의 이솔라벨라. 원형적인 이름이지만, 이 섬의 이름은 그렇게 밖에 지을 수 없게 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예쁘다는 말 말고는 다르게 표현해낼 수가 없었으니까.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나 보아오던 푸르고 투명한 바다 곁에 곱게 깔린 모래사장. 그리고 작고 예쁜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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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미나에 다시 방문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저 바다에 누워 잉여가 될 테야. 온몸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도 피하지 않고 온 햇빛을 다 받아들일 테야. 시칠리아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도, 하고 싶고 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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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하기 좋은 날, 카타니아

시칠리아 여행의 마지막 도시는 카타니아였다. 에트나 화산의 활동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검고 어두우며, 분위기마저 차분한 곳이라 들었다. 그래서 그런가, 내게 카타니아는 참 젠틀했고, 조용히 이별을 준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도시였다. 팔레르모, 타오르미나처럼 활기차고 눈부신 도시였다면 나는 아마 일상으로 돌아가기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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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지 않은 이별이 어디 있을까. 엉엉 소리 내 울며 헤어지는 대신, 마음 아프지 않게 웃으며 보내주는 철든 연인 같은 이별을 했다. 괜찮아,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라고 애써 스스로를 다독이는 내게 카타니아는 점잖게 웃음을 보이는 것 같았다. 마지막이 카타니아여서 참 다행이었다. 긴 시칠리아의 여행은 카타니아처럼 점잖게. 그렇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 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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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에서 보냈던 시간은 참 아름다웠다. 지중해에 빠진 다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중독 가득한 것인지 알려 주었고. 미식이 여행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해주었다. 그 좋았던, 아름다웠던 시간들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언제라도 기억할 수 있도록 글로 담아두려 한다. 조금 길어질 테지만, 시작한다. 나의 시칠리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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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급휴가의 소중함을 아는 직장인. 글 쓰는 게 제일 어렵고도 재밌는 생계형 콘텐츠 에디터. 청춘의 즐거운 날들을 기록해나가는 여행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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