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나이, 그 우아한 느긋함
김망상 | 2019-04-02 00:30:58

"브루나이, 그 우아한 느긋함 "                 

미세먼지가 시대의 화두가 되어서일까. 아시아의 허파라느니, 마지막 청정지역이라느니 하면서 브루나이에 대한 관심도 콘텐츠도 점점 많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길래 ‘국왕 폐하가 세뱃돈 주는 나라는 어떤가 보자’하며 떠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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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 땅도 금수강산도 맞긴 한데, 단군 할아버지는 왜 하필 석유 나지 않는 땅에 터를 잡으셨을까 약간 억울해하면서 5시간 30분간의 비행을 마쳐 브루나이에 도착했을 때엔 새벽 5시가 다 되어가던 시간이었다.

자타 공인 쇼퍼홀릭이라는 개인 성향 못 버리고. 로열 브루나이 항공은 기본 23kg 언저리인 일반 항공사의 위탁 수화물 무게에 비해 월등히 자비로운 30kg 위탁 수화물이 제공된다는 것부터 아주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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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밖으로 나와 차를 기다리면서야 실감했다.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가 펼쳐진 공기 좋은 곳에서 한 달 살기를 계획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검색해 보았을 바로 그 나라에 드디어 도착했구나, 하고. 크게 숨을 들이마셔 보았다.

꼬박 새벽을 달려 날아온 피로감 때문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달 이상의 장기 거주가 아니라 단 며칠 정도의 브루나이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이라면 못해도 하루쯤은 머물러본다는 그 호텔, 엠파이어 호텔로 이동했다.


7성급 호텔의 위엄
브루나이 엠파이어 호텔
The Empire Hotel & Country club Brunei

두바이의 버즈 알 아랍과 더불어 7성급이라고 알려져 있는 엠파이어 호텔. 이곳이 7성급이라 입소문을 타게 된 것은 다른 것보다도 영빈관으로 개장한 역사와 내장재의 고급스러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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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누웠을 때에 감촉부터 행복한 이집트산 면 시트나 어메니티, 객실의 미니바가 전부 무료로 제공된다는 점 또한 매력적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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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홀 골프장, 야외 테니스 코트, 카야킹, 볼링장, 라켓볼과 스쿼시 등 리조트 내에서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괌이나 사이판 등지의 올 인클루시브 리조트를 선호한다면 브루나이 여행에서도 비슷한 듯 조금 다른 결의 리조트 호캉스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대중교통 편이 썩 좋지 않은 브루나이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호텔에서 공항까지의 픽업 교통 편을 제공한다는 것 또한 엠파이어 호텔의 장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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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의 이름만 가능한
금빛 모스크

어차피 온 여행, 호텔에만 있기보다는 볼 거리와 체험할 것들 중심으로 여행하고 싶다면 이국적인 풍경의 정수를 보여주는 모스크부터 시작하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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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곳곳에서 한국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형태의 모스크들을 만날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첫 손에 꼽히는 모스크라면 역시 28대 국왕의 이름을 딴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Sultan Omar Ali Saifuddin Mosque)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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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금으로 만들어진 돔과 등대 같은 첨탑(미나렛)의 조화가 웅장한 이곳은 1958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매우 현대적인 느낌이었다. 일정상 낮의 모습은 가까이에서 보지 못하고, 인공 호수에 왕실 선박과 함께 반영되는 야경만 근처로 다가가서 보았기 때문일까. 신성한 모스크를 둘러싼 일대는 의외로 꽤 로맨틱한 느낌이었다고 기억한다.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가 골드 & 화이트의 세련된 조화가 인상적이었다면 현 술탄 모스크인 자미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Jame'Asr Hassanil Bolkiah Mosque)는 현 국왕인 하사닐 볼키아의 즉위 25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진 모스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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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 명까지 동시에 입장할 수 있다더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걸어서 사방을 돌아보는 것만도 한참이 걸릴 만큼 웅장하고 화려했다. 때마침 기도 시간이라 사방의 스피커를 타고 울리는 노랫소리와 경전을 읽는 목소리가 이국적인 풍경에 신비로움을 더했다.

누군가의 신전에서 누군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 동안 주변을 둘러본다는 것이 나도 모르게 약간 죄송해졌을 만큼 독특한 신성성과 생활감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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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집,
깜퐁 아예르
Kamapong Ayer

밤의 랜드마크이자 이국적인 화려함의 극치가 전왕과 현왕의 이름을 딴 금빛의 모스크들이라면 낮의 랜드마크이자 서민적인 풍경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장소로는 캄퐁아예르(Kampong Ayer)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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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 이 수상 가옥 지구에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있다는 것도 이 캄퐁아예르가 그냥 보여주기 위한 장소가 아닌, 실제 누군가의 삶을 담고 있는 장소임을 반증하고 있었다. 수상 택시가 아니라 도보로 이동한다 치면 동선상 구시가에서 신시가 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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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섦의 설렘을 즐기면서 걷고 싶을 때에 걷고, 앉고 싶을 때에 앉는 것이 여행의 즐거움 아니겠냐며 선착장에서 만난 고양이와 한참을 앉아 노닥거렸다. 해치는 사람 없이 다들 제 집 고양이처럼 길고양이를 살펴주는 분위기라서일까. 이곳에서 만난 고양이들은 경계심 없이 다가와 친근하게 몸을 부비는 녀석들이 참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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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글게 삐걱대는 판자를 나름 단단하게 이어 만든 다리가 집과 집, 구역과 구역을 끝없이 잇고 있는 풍경은 체력도 감성도 마른 스펀지처럼 버석거리는 사람의 마음도 어딘가 말랑하게 만들어줄 만큼 감성적인 매력이 있었다.

생김부터 낯선 이방인에게 밝은 미소로 다가와 동생을 자랑하는 동네 아이, 투망을 던지는 어르신, 수줍은 듯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들과 나른한 고양이. 왕의 이름을 딴 황금 덮인 모스크들이 그렇게 과하게 화려한데도 왜 경박해 보이지 않을까 싶었던 내 의문은 소박함으로 옹기종기 모인 캄퐁아예르에 와서야 답을 찾았다.

누구도 급하지 않고, 누구도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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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걷는 사람이 삐걱대는 목조다리에 겁을 내며 천천히 걷는다고 재촉하는 이도 없는 곳. 좁은 폭의 외길을 추월해 지나가려고도 하지 않는 곳. 우리 고양이, 너희 고양이, 길 고양이가 아니라 손 가는 이가 먹이를 주고 보살피는 ‘모두의 고양이’가 살고 있는 곳.

신논현역에서 강남역으로 걸어가는 십여 분 동안만 생각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고, 얼마나 많은 소음이 주변을 감싸는지, 그런 북적임과 소란함에 내가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지를 이 우아한 느긋함의 나라에 와서야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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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몰랐던 내 일상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에서 여행은 참 매력적이라 생각하며 삐걱거리는 다리를 걷는 늦은 오후. 저만치에서 길고양이 한 마리가 사뿐사뿐 걸어가 누군가의 집에 제 집인 양 턱하니 주저앉아 하품을 하는 것이 보며 덩달아 쪼그려 앉았다. 무료한 행복이란 게 이런 거구나-하며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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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구시가에 머무르는 이들을 모두 신시가로 이전하는 것이 목표라 하니 몇 년 뒤에 다시 브루나이 여행을 오게 된다면 지금의 이 모습과는 퍽 다른 풍경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묘한 아쉬움과 함께 왕궁인 이스타나 누룰이만(Istana Nurul Iman)으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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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타나 누룰이만은 현존하는 왕궁 중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는 곳이지만 현왕과 왕비가 실제로 거주하는 술탄의 궁전인 만큼 일반인에게는 입장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

1년 중, 왕이 세뱃돈을 준다는 바로 그날에만 민간에 입장이 허용된다는 문턱 높은 왕궁이라 담 너머에서만 보고 가는구나- 싶던 순간. 내부에서 차량이 나오는 덕분에 굳게 닫힌 왕궁 철문이 열리는 순간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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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할 땐 시장이 정답
가동 야시장
Gadong Night Market

밤 비행기로 귀국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브루나이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가동 야시장으로 결정했다. 아마 어딜 가도 느긋하고, 조용했던 브루나이에서 가장 소란스럽고 가장 바쁜 곳으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 활기차게 북적이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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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부터 팬케이크를 만들어왔다는 팬케이크집부터 한국 돈 1,600원이면 가리비 구이 10미를 먹을 수 있는 조기구이 집, 패티부터 직접 만들어 굽는 햄버거 집까지. 취향껏 골라 먹을 수 있는 먹거리들이 지붕 아래 넓게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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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답지 않게 내 소지품과 치안에 심하게 날 세우지 않아도 좋은 분위기나 술 담배를 저어하는 분위기라 더없이 건전한 밤 시간, 어딜 가도 미소에는 미소로 대답해주는 친절하고 조용한 사람들까지. 서둘지 않고 소란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지낸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안정되는지를 머무는 내내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브루나이였지만 특별히 뭔가를 살 만한 것이 없다는 부분만큼은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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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느끼는 리얼 정글의 법칙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
Ulu Temburong National Park

트레킹이나 등산 같은 체험형 여행을 즐기는 타입이라면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Ulu Temburong National Park)이 아주 특별한 체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곳이 바로 ‘아시아의 허파’라고 불리는 리얼 정글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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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다는 뜻의 울루(Ulu)가 앞에 붙어있는 만큼 템부롱은 정말 멀다. 웬만한 뷰포인트가 도심에서 15분 내외에 포진해있는 브루나이 여행의 이동거리를 생각해본다면 시내에서 차로 달려, 선착장에서 배를 갈아타고 40여 분, 거기에서 또 구름다리와 천계단을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 템부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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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방랑형 집순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집요정에게는 정말이지 멀고 먼- 울루울루 템부롱이었다.

투덜거리긴 하지만 이왕 온 여행이니 한 번은 가 본다며 나선 길. 자주 주저앉고 가끔 드러눕기도 하면서 천 개의 계단과 세 개의 까마득한 첨탑을 걸었다. 평소에도 등산, 풀, 나무, 트레킹, 수영 등등 몸으로 부대끼는 자연을 참 좋아하는 우리 엄마가 정말 좋아하시겠구나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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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멀리서 보라고 존재한다 믿는 사람들

그게 바로 나다. 

나처럼 주체적으로 자신의 무릎 관절을 사용한 고도 변화에 썩 행복해하지 않는 타입의 사람들에게는 브루나이의 바다가 울루 템부롱의 대체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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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스러울만큼 심하게 화려한 바닷속은 아니지만, 이 나라는 바다 속 마저도 깨끗하구나-하며 감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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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와 24시간 공기청정기가 돌아가는 방 안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지금. 지난 브루나이 여행을 되짚을 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고양이와 함께 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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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 닿는 고롱거리는 숨소리. 그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올려다 본 새파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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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시야의 끝에서 반갑게 손을 흔들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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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 봉지 부스럭대는 소리를 따라 오는 원숭이들. 

템부롱의 천 계단을 오르다 드러누웠을 때에 겹겹의 나뭇잎 사이로 비춰내려오던 햇살.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에 낮게 울려 퍼지던 모스크의 기도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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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색 꿉바와 뾰족한 미나렛 사이에 걸린 그믐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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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나이가 어떤 곳이냐 묻는다면 이 모든 것을 담고 이렇게 답해야지.

우아한 느긋함이 있는 나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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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며칠째 잠 못 자며 일에 허덕이고 있는 지금 내게 더없이 간절한 곳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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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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