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에서 바느질 수업] 할머니의 레시피, 한 땀 한 땀 착하게
유앤나 | 2018-11-15 10:00:00

리스본의 레시피, 한 땀 한 땀 착하게


리스본,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바삭거리는 소리가 맛있는 에그타르트, 노릇노릇 구워진 정어리, 식욕을 자극하는 두툼한 문어와 초콜릿 잔에 담긴 체리주. 이 모든 것들 보다 더 달콤한, 리스본의 레시피를 소개합니다. 리스본, 할머니의 레시피 '한 땀 한 땀, 착하게'  


oh, Youna!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단번에 내 이름을 부른다.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반갑게 끌어안는다. "기다렸어!" 한국 사람은 처음이니까, 라며 쾌활하게 나를 맞이하는 그와 그 너머로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동네 할머니들 사이에서 "아.. 응. 반가워요!"라고 말할 수밖에. 그러니까, 나도 Avo 아니 이 리스본이 처음이거든요.

Avo는 리스본 노인들의 세컨드라이프를 위해 지원을 하는 곳이다. 은퇴 후 노인들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주고, 남은 삶을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곳. 내부를 둘러보니 온갖 알록달록하고 귀여운 소품들이 눈길을 끈다. 손녀딸을 위해 인형을 만들었다면 이런 느낌일 거야. 사진을 찍어도 괜찮냐고 물으니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이란다. 사진을 다 찍고 나면 수업은 그때부터 하면 된다는 Avo의 첫인상은, 딱 할머니 댁이다. 아, 물론 할머니 (조금 많이)들이 계신 곳이긴 하지만. 


Old is the New young, Avo.


이런 주머니라니, 정말 예쁘잖아.


쿠션, 액자, 배게와 인형. 온갖 폭신거리는 것들로 가득찬 곳.


Avo, Lisbon. 2017.

바느질을 알려줄 소피아 할머니와 나란히 앉는다. "음, 소피아는 영어를 할 줄 몰라. 그러나 바느질은 손 길로 배우는 거니까 괜찮을 거야. 그리고 소피아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내게 물어보면 돼! 내가 번역을 할게." Avo의 직원 리타는 소피아를 내게 소개하고, 아마 그녀에게도 같은 설명을 한다. 소피아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미소를 짓는다.

'영어로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그림을 고르는 것부터 시작했다. 한 장, 한 장의 그림들을 살펴본다.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지만, 색색깔의 실로 꿰매어지면 더 아름다워질 그림, 골랐다.



이런 몸매, 되고 싶 아니 이런 그림, 예쁘다.


"이걸로 해 볼 거니?" 포르투갈어로 묻는 소피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한대, 예쁘지?" 아마도 이런 말일 듯 소피아는 뒤를 돌아 다른 할머니들에게 말한다. 그리고 그녀들은 "와우" 감탄을 하거나 몇몇은 "Pretty!!" 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칭찬을 받는 곳. 어깨가 으쓱 인다.

소피아가 먼저 한 땀, 두 땀 꿰매는 것을 보고 조심조심 첫 바느질을 한다. 내 손길을 바라보며 "그렇지."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그녀. 내 나이쯤 되면 이런 바느질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부터 우리는 배우지 않았던가. 서툴게나마 작은 주머니를, 버선을, 그리고 취미로는 십자수나 프랑스 자수를 해보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한 땀을 놓는 것에 "아이코, 잘하네."라는 말을 듣자 어쩐지 응석이 부리고 싶어 진다. 괜히 느릿느릿 실을 꿰매며 그녀를 쳐다본다. 칭찬을 기다리던 그때처럼.



공간마저 사랑스러운 곳, Avo.

끊어졌다. 어디서부터 엉킨 건지 매듭이 꼬여버려 소피아에게 보여주니, 한참을 살펴보더니 뭉친 부분을 가위로 톡 끊는다. 그리고 꼬인 실을 풀어낸다. 아마도 내 표정이 좋지 않아서였을까? 소피아는 손바닥을 자신의 가슴에 갖다 대고 다시 손을 흔들며 고개를 젓는다. '가슴 아파하지 마.' 다시 새로운 실을 고르고 이어간다. 잘못 꿰기 시작한 그 순간으로 돌아가 풀어내면 된다. 어쩌면 처음보다 더 빠르게, 예쁘게 수를 놓을 수 있는 타이밍 인지도 모른다.

그때 리타가 잘 하고 있느냐며 말을 걸어오고, 소피아는 리타에게 무어라 말을 한다. 그 말을 듣더니 리타가 내게 다가온다. "소피아가 널 걱정해. 가슴 아파하지 말라고. 실수는 잘못이 아니래. 다시 하면 된대."

서로의 손을 보며, 한 땀씩 번갈아 색을 채워간다. 어느 순간 소피아는 포르투갈어로, 나는 영어로 말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실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꿰어지듯, 우리의 이야기도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서툴어도 괜찮아, 할머니가 곁에 있으니까.


그 다음은 어떤 실로 이어가볼까?

"Youna!"

고개를 폭 숙이고 있던 내가 위를 바라보자 바바라 할머니가 쿠키를 건넨다. 테이블에서 작업을 하던 리타가 말한다. "바바라가 집에서 구워온 거야. 물론 잼도 직접 만든거지. 바바라의 요리 솜씨는 이 마을에서 가장 유명하거든." 토마토 잼이 두툼하게 발린 큼지막한 쿠키를 받아 들었다. "오브리가도!"(고마워요) 하자 할머니들이 모두 웃는다. 

마치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것만 같다. 좋은 말만, 또박또박. 착하게 하고 싶어질만큼. 누군가 내게 "바느질을 언제 배웠어요?" 묻는다면, 나는 이 곳 리스본을 떠올리겠죠. 할머니가 만든 소품들에 둘러 쌓여서 색색의 실로 그림의 색깔을 채워가던, 고개를 폭 숙인 채 한 땀 두 땀 수를 놓으면 솜씨 좋기로 유명한 할머니가 쿠키를 내어주던 순간을.

잘못 꿰거나 엉키게 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당신은 배울 거예요.
풀어내는 법을, 속상해하지 않는 법을.
더 아름다운 실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법을.

할머니의 레시피가 궁금한가요? 그녀는 말해주었죠. 세상에 정답은 없단다. 정답을 만들어 가는 과정만 있을 뿐.

리스본, 그곳에는 당신을 기다리는 이야기가 있죠. 오직 당신 손으로 고르고 채워갈 그림들과 그런 당신을 사랑스럽게 봐줄 그녀가 있는 곳. 리스본 쿠키의 레시피가 궁금하다면 이야기를 지어가는 법이 알고 싶다면, 들려보기를.

아, 시간은 넉넉하게 비워두고 가야 합니다. 분명 한 가지만 신청했는데, "원한다면 하나 더 만들어볼래?" 하며 그림을 가득 꺼내오는 그녀들이 있을 테니까요.


잼은 듬뿍 올려야 맛있으니까

Lisboa, 2017. 
  


포르투갈 리스본을 여행할 때, Avo에 들려보는건 어떨까요? 
할머니와 함께 쿠키, 아니 바느질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방이죠.

※ Avo : 리스본의 비영리단체인 Fermenta에 속해있는 곳으로 사회 문화 발전을 위해 힘쓰는 곳입니다. 전통적인 솜씨와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공동체의 노인들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를 구현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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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앤나
유앤나

여행을 합니다. 배낭보다 에코백, 운동화보다 슬립온, 맥주보다 라떼를 들고. (brunch: @sweetm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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