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날을 그리워할테지, 스탠퍼드 봄날
moonee | 2016-04-25 09:04:48

언젠가 이날을 그리워할테지,

스탠퍼드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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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당분간은) 학교와 먼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이지만, 연고도 없는 스탠퍼드대학교에 꼭 가고 싶었던 이유는 인상깊게 읽은 한 편의 소설 때문이었다. 작년 이맘 때쯤 난 미즈무라 미나에의 '본격소설'에 흠뻑 빠져 지냈다. 그 이후로도 다른 몇개의 소설을 읽고 감동을 받긴했지만 본격소설을 읽었을 때처럼 잠을 못 이루거나, 읽은 후 며칠동안 마음이 내려 앉아 힘들었던 경험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작년부터 소설에 언급된 여러 도시를 순례하며 이야기를 되짚어 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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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12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작가 미즈무라 미나에가 문예잡지 편집자 유스케로부터 전해 들은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루이자와에 있는 친구의 별장에 놀러 간 편집자 유스케는 길을 잃으며, 근처 마을인 오이와케의 한 낡은 별장에 신세를 지게 된다. 그곳에서 가정부 후미코라는 여자를 만나고, 그녀가 일했던 사이구사 가(家)의 기나긴 역사와 사이구사 가의 둘째딸 요코, 옆집에 세 들어 살던 미천했던 아즈마 다로의 사랑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사랑이야기를 들은 유스케는 일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갑자기 미국으로 떠난다. 유스케가 아즈마 다로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미나에를 찾아간 곳은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위치한 스탠퍼드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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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미나에는 스탠퍼드에서 일본문학 세미나를 맡고 있었는데, 실제 작가 미즈무라 미나에 역시 스탠퍼드에서 강의를 했었다. 이 점이 본격소설의 가장 흥미로운 점. 어디서부터가 사실인지 어디서부터가 허구인지의 경계가 매우 흐릿하게 처리되어 있는 것이다. 유스케가 미나에의 세미나가 끝날 때까지 잡지를 읽으며 기다리겠다고 한 도서관은 스탠퍼드의 후버도서관. 

- 네, 그렇지만 세미나를 세 시간이나 하는데요.

- 상관없습니다. 도서관에 가 있겠습니다. 저는 가끔 후버 라이브러리에서 잡지를 읽거든요. 

후버 라이브러리는 동아시아 관계 장서 전문 도서관이다.

- p.148 '본격소설' 상 (미즈무라 미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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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버는 미국의 제31대 대통령이다. 스탠퍼드 출신인 그가 1919년에 설립한 도서관. 후버는 중국에서 거주한 적도 있어 중국어에도 능통했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 '동아시아 관계' 서적이 많다는 이야기에 납득이 간다. 유스케는 비 내리는 날 (또 강의가 있던 날이었으니 아마도 주중이었을 것이다) 방문했지만 내가 찾아갔을 땐 구름한 점 없는 맑은 날의 토요일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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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단위로 캠퍼스에 나와 공놀이를 즐기고 있기도 했고, 친구끼리 혹은 교수의 아우라를 풍기는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며 나른한 봄날의 오후를 만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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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대 느낌을 한껏 풍기는 건물과, 야자수가 아름답게 늘어서 있는 메인쿼드를 지나 후버도서관에 다다랐다. 아쉽게도 공사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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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는 등록 절차를 밟아야 들어가볼 수 있어서 시간상 돌아보진 못하였다. 유스케처럼 한국잡지를 읽곤 '한국이 멀어졌어요'란 이야기를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물론 여행 첫번째날 방문하여 이런 멘트는 매우 허풍이겠지만) 기차시간이 맞지 않아 마을 구경도 하고 팔로알토역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해가 서서히 떨어지고 있는 하늘을 배경으로 역 안엔 너다섯명의 남녀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스무고개와 같은 놀이를 하고 있었다. 생김새는 동양인의 얼굴이었지만 모두 유창한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유학생일까 이민자들일까 궁금해하며, 나의 대학시절을 떠올렸다. 언젠가 저들도 이 시간을 나만큼이나 그리워 하겠지.

 

기차가 도착할 때쯤엔 주홍색을 내는 햇빛이 하늘을 선긋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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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가는 법 : 칼트레인 (caltrain)을 타고 팔로알토 (palo alto) 역에서 내려 스탠퍼드 캠퍼스 안을 순회하는 무료셔틀버스를 이용.

http://www.caltra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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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드라마 속 인물들이 다녀간 장소를 직접 가보기도 하고, 묘사된 요리도 맛보는... 그런 여행을 좋아합니다. 물론 무작정 떠난 여행에서 책, 영화, 드라마에서도 보지 못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감동을 맛보는… 그런 여행도 즐깁니다. www.istandby4u2.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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