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마주친 신사의 겨울밤, 구시다 신사
Wish to fly | 2013-05-26 10:05:06

 

후쿠오카, 우연히 마주친 신사의 겨울밤

구시다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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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우연이 주는 즐거움

겨울 여행은 아쉽기 그지 없다. 여행을 하는 이들에게 짧은 하루란 그렇지 않아도 달갑지 않은 녀석인데, 겨울 여행은 제 아무리 부지런하려고 애를 써도, 일찍 찾아오는 밤 때문에 더욱 짧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후쿠오카를 찾은 그 날도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것0도 없이 벌써 찾아온 밤이 야속했다. 하릴없이 버스를 타고 다음 장소로 가야 하는 여행자의 발걸음이 무겁고도 무거울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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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진에서 탄 버스는 하카타로 향했다. 하루종일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맞은 몸은, 버스 안의 따뜻한 온기에 채 익숙해지기도 전에 먼저 노곤해지기 시작한다. 바깥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은지 오래, 꾸벅꾸벅 하고 앉았는 이 저질 체력이여.

잠깐 졸다 눈을 떴다. 익숙하지 않은 창 밖 풍경에 깜짝 놀라 바로 버스에서 내려 버렸다. 여기가 어딘지는 알 턱이 없었다. 어렴풋이 들은 차내 방송과 이정표의 방향들과 손에 들고 있는 (거의 무용지물의) 지도를 조합하여 내 위치를 판독해 내려 용을 써 본다. 그러나 이내 포기! 걸어보자. 어차피 걷기 위해 떠나온 여행이 아니던가. 익숙하지 않은 풍경들이 주는 불안함은 잊고, 그 대신 설렘으로 걷는다. 그리고 밝게 빛나는 골목을 마주한다. 머리로는 그 방향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 밝은 빛은 자꾸 길 잃은 여행자의 발을 이끈다. 도대체 여긴 어디인게야.

그리고 그렇게 마주한 신사의 밤. 여기는 후쿠오카의 구시다 신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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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구시다 신사는 원래 찾아 오려고 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마지막 날 낮에 찾아 여유롭게 둘러보려 했었다. 헌데 어쩌랴. 이렇게 내 눈 앞에 서 있는데, 그저 만끽하는 것이 여행자의 옳은 태도일 터이니, 이미 까맣게 짙어진 하늘 빛을 깨닫고 얼른 걸음을 옮겨 구시다 신사의 안으로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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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푸른 빛이 남은 서쪽 하늘을 배경으로 채도 높은 주황 빛의 도리이가 서 있다. 그 매력적인 조화. 이 때까지도 내가 선 곳이 '구시다 신사'인지도 몰랐다. 전각 바로 옆에 세워진 배치도의 -알아보기 쉽지는 않았던- 몇 개의 한자를 발견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 곳은 그저 우연히 마주한 이름 모를 신사였을 뿐이었다. 

 

 

구시다 신사

주소 : 1-41, Kamikawabatamachi, Hakata Ward, Fukuoka, Japan

가는 법 : 후쿠오카 시영지하철 Gion 역 2번 출구로부터 남서쪽으로 도보 5분. 또는 하카타의 캐널시티로부터 걸어서 도착할 수 있다.

전화번호 : 92-291-2951

건축시기 : 757년. 헤이안 시대.

요약 : 헤이안 시대인 757년 건축된 신사로, 후쿠오카의 대표적 축제인 하카타기온야마가사마츠리의 오이야마가 출발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렇게 구시다 신사를 마주했다. 원하지 않은 시각에, 원하지 않은 방식으로. 하지만 그것은 행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날 나는 -원래의 계획대로 낮에 찾았더라면 마주하지 못했을- 밤의 고요함을, 똘똘똘 물 흐르는 소리를, 밤이기에 더 빛나던 신사의 색을 마주할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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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의 뒷마당.

파란 하늘과 주황 빛 가로등이 발 길을 이끌었다. 사람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부스럭거리는 길냥이들만이 제 집처럼 이 곳을 드나들었다. 은근한 스산함에 조금 두렵기도 했으나 이내 마음은 평온해졌다. 그 평온해진 마음으로 신사의 밤, 이곳 저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물론 이내 쫓겨났다. 퍽 마음에 들었던 신사의 뒷마당은 사실 밤에는 허락되지 않은 곳이었다. 매력적인 하늘 빛과 인공의 조명 빛이 함께하는 이른 밤에 찾았기에, 잠깐이라도 그 마당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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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쉬운 마음은 뒤로하고 본전으로 향했다.

우연히 그 시간을 찾은 네 명의 여성. 그들은 담담하고 또 조금은 간절하게 그 곳을 찾아 그들의 하루를 정리했을 것이다. 좋은 일터와 내 사랑하는 사람의 건강, 그런 소박한 소망들을 되뇌며, 여느 때 처럼 그들의 하루를 정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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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건축에서는 찾을 수 없는 지붕의 형태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분명 유려하고 또 매력적인 선들이긴 하지만, 나는 우리의 건축물이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딱 떨어지는 그 힘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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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나와. 그리고 시데.

저 거대한 밧줄은 우리네 금줄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허나 그 밧줄의 의미보다는, 저 거대한 짚 더미를 저리도 정갈하게 꼬아 놓은 그들의 솜씨에 더 마음이 움직였다. 무엇 하나 비뚤어지지 않은 것이 그들의 장점이자 또 어찌 보면 단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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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소박한 소망.

정갈하게 써 내려간 글씨에 매력을 느껴 카메라를 들이대었으나, 몇몇 아는 한자들만 눈에 들어올 뿐이니 이방인인 나는 그저 무병하고 운수대통하기를 바라는 소망일 것이리라 그 의미를 가늠할 수 밖에 없었다. 의미야 무엇이었든, 누군가의 소박한 소망을 들여다 보는 것 또한 내 여행의 작은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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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지 않은 시각에, 원하지 않은 방식으로 마주했던 구시다 신사. 그랬기에 더 소중한 기억으로 남게 된 이 장소. 여행이라는 것이 마음 먹은대로 흘러가지 않기에, 그래서 더 매력적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며 하카타의 이름 모를 골목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다. 똘똘똘 물 소리를 들으며.

 

 

이런 여행자에게 추천

밤의 신사를 경험해보고 싶은 여행자.

왁자지껄한 여행 보다는 조용히 생각하는 여행을 더 좋아하는 여행자.

길을 잃어도 당당할 수 있는 여행자.

 

신사의 밤은 그것의 낮보다 아름답다

여럿의 일본 여행을 하면서 많은 신사를 경험했다. 도쿄의 야스쿠니부터 여기 후쿠오카의 구시다까지. 야스쿠니를 찾는 정치인들의 행태야 곱게 볼래야 볼 수 없겠으나, 사실 대다수의 현지인들은 그들의 삶의 일부분으로, 진심어린 마음으로 그 신사를 찾는다. 어떤 의도를 갖느냐에 따라 장소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되는 법이다. 나에게 '신사'는 종교적인 의미보다 '공간'과 '건축'의 의미였다. 그런 나에게 구시다 신사는 '밤의 신사'라는 또 다른 표정을 보여준 공간이었다. 한낮의 신사와는 또 다른 고즈넉함과 고요함. 하루 일을 끝내고 정갈한 마음으로 하루를 정리하려는 그네들의 삶을 뒤쫓아 보고 싶다면, 밤의 신사를 찾아 보라. 신사의 밤은 그것의 낮보다 아름다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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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라는 것으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여행을 떠나고 그 여행의 경험으로 다시 건축을 하는 여행이 생활이고 생활이 여행인, 여행중독자입니다. http://blog.naver.com/ksn33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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