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과 아유타야, 영롱했던 3일의 기록
김노을 | 2020-01-07 01:43:06

여행 중 현지인을 만날 때마다 이 도시를 애정하고 있노라고 외쳐댔다. 팔불출처럼. 어쩔 수 없다. 도대체 이 이방인이 이런 소리를 왜 하는가 싶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던 태국인들에게 이제야 양해를 구한다. 이건 다 방콕이 사랑스러운 탓이다. 적당히 정신없고, 적당히 여유로우며, 적당히 뜨거운 방콕은 많은 여행자가 사랑하는 도시다.

풍경이나 유적 등등 여행자가 좋아할 만한 것들이 많다는 점은 기본이요, 마주치는 사람들은 어찌 그렇게 하나같이 친절한 것인지. 어딜 가나 웃으며 반겨주는 이들, 조금 어설픈 여행자 행색이다 싶으면 어김없이 도와주는 손길들. 이러니 감동하지 않을 재간이 어디 있을까. 그걸 잊지 못해서 다시 방콕을 여행했다.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이번에는 아유타야도 일정에 함께 집어넣었다. 2019년의 끝자락. 올해도 수고했다며 나 자신에게 안겨주었던, 선물 같은 여행을 지금부터 소개한다.


1일 차 | 조금 멀리 떠나볼까
방콕 외곽에서 조금은 여유롭게 여행을 시작했다. 북적거리는 방콕을 조금만 벗어나면 더욱더 다채로운 태국의 풍경을 만나볼 수 있으니까. 태국의 지역 색채가 짙게 묻어나는 시장이나, 동네 구석구석을 잇는 수로,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사진을 남길 수 있는 명소까지 심심찮게 등장해주니 말이다. 교통이 조금 불편하다는 점만 뺀다면, 방콕 외곽의 여행지를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니 채비를 할 수밖에. 방콕 외곽으로 모험을 떠났다.

# 담넌사두억 수상시장

작은 선착장에 도착하자,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롱테일 보트의 사공이 손짓했다. 그와 함께 150여 년 전부터 문을 열기 시작했다는 수상시장으로 향하기로 했다. 방콕 서쪽, 랏차부리주에 자리하고 있는 담넌사두억 수상시장은 라마 4세의 명령으로 생겨난 운하를 따라 형성된 전통 시장이다. 우리 일행이 일렬로 자리를 잡자, 사공이 이야기했다. “구명조끼를 입으세요.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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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테일 보트는 빠르게 나아갔다. 다른 배를 지나칠 때, 그리고 상점이 있는 곳에서만 속도를 조금 줄였다. 무심히 보트를 몰기만 할 것 같았던 사공은 담넌사두억 운하 한가운데에 이르자 빠르게 속도를 올리기도 했다. 단순히 이동 수단으로서의 보트라고 생각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는 포인트도 있었던 것이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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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시장으로 들어섰다. 운하를 따라 자리를 잡은 상인이 다양한 물건을 내놓고 롱테일 보트에 탄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나 매장을 발견하면 사공에게 요청해 잠시 멈추고는 했다. 상인들이 보여주는 물건은 주로 기념품이었고, 과일 등 디저트류, 지역 색깔이 가득 담긴 음식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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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내리기로 했다. 운하 안쪽으로도 시장이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쌀국수와 팟타이로 태국 여행의 시작을 장식했다. 식사를 즐긴 후에는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에 올라 수상시장의 감성적인 풍경을 바라보기도 했다.


<Info>

- 위치: Damnoen Saduak, Damnoen Saduak District, Ratchaburi 70130
- 전화번호: +66 87 969 3428
- 영업시간: 매장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06:00~14:00
- 보트 탑승 선착장: Shang Boat Pier
- 보트 이용 요금: 외국인 기준 보트 1대 당 2,000바트 / 2시간 3,000바트 (최대 4인)


# 매끌렁 위험한 기찻길
여기도 북적거린다. 이번에는 매끌렁 역 근처 기찻길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시장이었다. 아니, 기찻길에 시장이 있다니. 기찻길 바로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늘어진 시장은 하루 네 번, 홍해가 갈라지듯 기차에 길을 내어준단다. 그 진기한 광경을 그냥 지나칠 수야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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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저 멀리서 기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상인들은 마치 야구장에서 파도타기 응원이라도 하는 것처럼 차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형색색 천막으로 뒤덮였던 하늘이 열렸고, 매대는 선로 바깥쪽으로 끌려나갔다.

안전요원의 거친 목소리와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육중한 몸의 기차는 경적을 울려대며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기차를 가로막고 있는 인파가 많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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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나 역시 그랬다. 이 비좁은 기찻길을 따라 들어오는 기차도 그렇지만, 그 시각에 맞춰 능수능란하게 매대를 치우고 천막을 걷는 상인들의 손놀림이 더 눈에 들어왔다.

미리 자리를 선점하고 있어야겠다는 내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기차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이전 역에서 타고 온 듯한 여행자는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미소를 지었다. 이런 풍경, 어디에서 또 볼 수 있을까.


<Info>

- 위치: Mae Klong, Mueang Samut Songkhram District, Samut Songkhram 75000
- 시장 영업시간: 04:00~17:00 (매장에 따라 다름)
- 반 램(Ban Laem) 역 기차 출발 시각: 07:30 / 10:10 / 13:30 / 16:40
- 매끌렁(Mae Klong) 역 기차 도착 시각: 08:30 / 11:10 / 14:30 / 17:40 (20분 정차 후 출발)


# 카오산로드
방콕 시내로 들어왔다. 카오산로드에 가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거기 낮에 가도 할 게 있어?” 태국 친구는 웃으며 답했다. “분명 밤과는 다른 카오산로드를 볼 수 있을 거야.” 호기심이 동했고, 결국 다음 목적지를 카오산로드로 잡고야 말았다. 낮에 카오산로드에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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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산로드는 낮에도 매력적이었다. 해가 저문 후의 카오산로드처럼 인파가 많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서 더 마음에 쏙 들었다. 한산한 거리를 따라 문을 연 펍 내부에는 여유롭게 오후를 즐기는 이들이 앉아 있었다.

골목길에서는 가성비 좋은 마사지숍을 쉽게 찾을 수 있었고, 바로 옆 람부뜨리 거리 쪽에서는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책을 읽거나, 낮잠을 빠진 여행자들이 모인 카페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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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진정한 여행자들의 거리였다. 다른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방콕이 가져다주는 여유를 만끽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또 있을까. 시원한 맥주 혹은 커피 한 잔과 함께라면 한껏 늘어지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오래 머물지는 않았지만, 한껏 여운을 남긴 채 돌아섰다. 카오산로드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온종일 게으름을 피우는 그날을 상상하면서.


<Info>

- 위치: Khaosan Rd, Talat Yot, Phra Nakhon, Bangkok 10200


# 롱 1919

새롭게 발견한 ‘롱 1919’는 태국 속 중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공간 중 하나였다. 한때 중국 상인의 물류 창고이자 포구로 사용했다는 이곳은 이제 복합문화공간으로 더 유명하다고 한다. 벽마다 중국 전통이 묻어나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일정 간격으로 매달려 있는 등불은 밤마다 롱 1919를 더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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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한 식당과 갤러리가 한쪽에 자리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잘 어우러지는 분위기. 아티스트가 직접 운영하는 공방들도 롱 1919 내에 입점해 있었다. 갤러리가 수리 중이어서 아쉬웠는데, 대신 공방들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 아티스트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작품을 한참이나 감상했다.


<Info>

- 위치: 248 Chiang Mai Rd, Khlong San, Bangkok 10600
- 전화번호: +66 91 187 1919
- 영업시간: 10:00~22:00 / 연중무휴


# 아이콘 시암

여행 중 백화점 쇼핑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아이콘 시암은 갈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태국 최대 규모의 쇼핑몰이라는 점은 차치하고, G층에 마련된 ‘쑥 시암(Sook Siam)’의 존재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

쑥 시암은 백화점 실내에 구현한 수상시장이다. 이곳에서는 태국 전역, 그러니까 77개 주에서 즐겨 먹는 전통 음식을 한꺼번에 만나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일정 기간을 두고 로테이션 형태로 진행해 여러 번 방문한다고 해도 늘 새로운 먹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하는 게 쑥 시암의 특징이라는 거다.

태국 음식의 다양성을 방콕 한가운데에서 접할 수 있는데, 방문하지 않을 이유는 또 무언가. 하루에 다 먹을 수 없음을 한탄하며, 쑥 시암을 돌고 돌고 또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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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 시암의 매력은 그뿐이 아니었다. 짜오프라야강 쪽에 펼쳐져 있는 광장에서는 무려 400m 길이의 음악 분수대가 화려한 쇼를 선보였다. 물줄기와 빛, 거기에 음악까지 함께 어우러지는 아이콘 시암의 분수 쇼는 방콕의 떠오르는 랜드마크란다.

아이콘 시암을 둘러보며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시원하게 쏟아내는 아이콘 시암의 분수 쇼를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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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

- 위치: 299 Charoen Nakhon Rd, Khlong Ton Sai, Khlong San, Bangkok 10600
- 전화번호: +66 2 495 7080
- 영업시간: 10:00~22:00 / 연중무휴


# 아시아티크
방콕 여행 첫 번째 날은 아시아 티크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방콕의 대표적인 야시장 중 하나이면서, 스트리트 형 쇼핑몰이기도 한 이곳은 모던한 분위기와 비교적 덜 북적거리는 게 매력이다.

짜오프라야 강의 야경을 감상하며 맥주 한 잔 기울이기에도 좋고, 태국의 수공예가들이 만들어 내는 각종 공예품과 기념품을 만나볼 수도 있다. 관람차와 회전목마 등 즐길 거리도 가득했다. 한쪽에 로컬 음식을 판매하는 공간도 있지만, 아시아 티크에서는 그보다 다양한 종류의 레스토랑과 펍에 더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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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시아 티크는 선상 파티가 열리는 유람선을 탈 수 있는 곳으로도 입소문이 자자하다. 짜오프라야강을 따라 뱃놀이를 즐기면서 무제한으로 맥주도 마실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다. 마침 날씨도 더웠던 터였다. 티켓을 구매하자 손목에 형광이 감도는 띠를 걸어주었다. 곧장 배에 몸을 실었고, 잠시 후 선원이 출항을 알렸다.

탁 트인 2층에 자리를 잡았다. 창 맥주를 병째 홀짝거리며 야경을 감상했다. 왓 포와 왓 아룬, 왕궁, 주로 고급 호텔 건물인 고층빌딩과 방콕의 흔한 가정집 건물들이 번갈아 나타났다. 낭만적인 밤이었다.


<Info>

- 위치: 2194 Charoen Krung Rd, Wat Phraya Krai, Bang Kho Laem, Bangkok 10120
- 전화번호: +66 92 246 0812
- 영업시간: 16:00~24:00 / 연중무휴



2일 차 | 아유타야에서의 영롱했던 순간들


찬란했던 아유타야는 무너졌다. 오랜 전쟁 끝에 미얀마는 승리했고, 아유타야를 정복했다. 왕실은 지금의 방콕이 있는 곳으로 쫓기듯 도망쳐야만 했다. 승자가 된 미얀마는 아유타야가 겹겹이 쌓아 올린 역사를 파괴했다. 황금빛 불탑이 앙상한 뼈대만 남겨진 채 버려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유타야의 영롱했던 순간들은 그렇게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수백 년의 시간이 더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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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아유타야는 여전히 영롱했다. 황금이 뒤덮었던 불탑에는 여전히 노을빛이 스며들었고, 잔잔한 강을 따라 이어지는 고즈넉한 풍경은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였다. 단순히 한 왕국의 유적만이 아닌, 도시 전체에 감도는 특유의 감성적인 분위기가 여행자의 마음을 간질였다. 아유타야에서의 영롱했던 순간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 방파인 여름 궁전
아유타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방파인 여름 궁전을 만났다. 아유타야 시대에 왕가의 별장으로 활용되었다는 이 궁전은 지금도 영빈관 등으로 쓰는 곳이란다. 다른 여행자에게도 이곳이 아유타야 여행의 관문 격에 해당했는지, 입구에는 아침부터 사람이 많았다.

관람요금을 내고 입장. 문을 통과하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골프장에서나 볼 법한 카트였다. 일행이 주저 없이 외쳤다. “저거 타야겠다. 그냥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더운 날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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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권 요금을 결제하고 카트에 올라타 100여 미터를 이동하고서야 알았다. 이건 정말 신의 한 수였다는 것을. 유난히 더웠던 이 날의 날씨를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궁전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오롯이 품고 있었다. 잔잔한 연못, 어디든 포근하게 감싸주는 햇볕, 푸른 잔디와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졌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평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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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타야 시대의 건축 양식은 물론, 태국에 정착한 중국인들이 왕가에 대한 감사 표시로 지어 주었다는 중국풍 전각, 유럽의 건축물을 본떠 만들었다는 유럽풍 전각 등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중간에 높이 세워진 탑에 올라 방파인 여름 궁전의 전경도 감상했다. 태국 사람들처럼, 연못에서 노닐고 있는 물고기들에게 먹이를 던져주며 소원을 빌어보기도 했다. 새해엔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랐다.


<Info>

- 위치: Ban Len, Bang Pa-in District, Phra Nakhon Si Ayutthaya 13160 태국
- 전화번호: +66 35 261 548
- 운영시간: 08:00~16:00
- 관람요금: 100바트 (외국인 기준)
- 팁: 입구에서 골프 카트를 대여해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다. 국제운전면허증이 필요하다. 첫 1시간은 400바트, 이후 시간당 100바트의 요금이 부과된다. / 연못 부근 누각에서 물고기 먹이용 빵을 20바트에 판매한다.


# 아유타야의 여러 유적

아유타야에는 온통 부서진 유적들뿐이다. 그나마 멀쩡한 것들도 복원했거나 새로 지은 것이 대부분이다. 높이 솟은 불탑들은 금으로 외관을 장식한 게 많았다는데, 지금의 불탑들은 화려한 장식 따위 온데간데없다. 그저 구조물만 남아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그게 묘하게 사람 심금을 울린다. 가볍게 지나치기에는 너무도 아쉬웠다. 천천히 거닐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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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야이 차이 몽콘이 시작점이었다. 그나마 상태가 양호해 보이는 불탑이 눈에 들어왔다. 높이만 해도 72m에 달한다는 이 불탑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처참하기도 했다.

아유타야 시대부터 전해졌다는 크고 작은 불상들도 성한 것이 없었다. 머리가 잘려나간 것은 예삿일이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것들도 많았다. 미얀마와의 오랜 전쟁을 거쳤고, 결국 패망하며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던, 그 시기의 흔적이 지금도 거의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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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프라시산펫에서는 일렬로 늘어선 왕족의 불탑을 눈앞에 두고, 그늘에 앉아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폐허가 된 건축물의 흔적 사이로 거닐기도 했다. 왓 마하탓에서는 보리수나무의 뿌리가 감싸고 있는 불상의 머리 부분 조각을 만났다(그 유명한).

그나마 깔끔해 보이는 불상은 아유타야를 재건하며 새롭게 가져다 둔 것들이란다. 찬란했던 아유타야 왕국의 모습은 이제 폐허가 된 유적지에서만 가늠해볼 수 있게 되었지만, 왠지 모르게 여전히 영롱하기만 했다. 왓 마하탓을 빠져나오던 순간, 코끝이 찡했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치고 있었다.


# 아유타야 선셋 투어
해가 저물어가는 시각. 이제 아유타야의 하이라이트를 만나러 갈 차례였다. 아유타야의 노을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멋진 순간 중 하나다. 아유타야의 노을을 가장 잘 즐기고 싶은 이들을 위한 선셋 투어가 운영 중이다.

선셋 투어라고 해야 특별할 것까지는 없고, 배를 타고 왓 차이왓타나람이 보이는 곳까지 달리는 거다. 아유타야의 여러 선착장에서 왓 차이왓타나람으로 향하는 배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도 그중 한 곳에서 배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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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짜오프라야강을 따라 달리다니. 이미 한 번의 롱테일 보트 경험이 있던 터라, 이번에는 좀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배는 우리를 태우자마자 강물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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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고,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배가 아유타야의 서쪽에 진입하자, 이미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곧이어 등장하는 왓 차이왓타나람의 실루엣. 황금빛 노을이 아유타야를 한껏 적셨고, 왓 차이왓타나람의 불탑 주변을 매혹적으로 물들였다.


<Info>

- 위치: 26/22 ม.2 หัวรอ Phra Nakhon Si Ayutthaya 13000
- 전화번호: +66 83 685 8598
- 영업시간: 08:00~18:30


# 강변레스토랑 (De Riva Ayothaya)
왓 차이왓타나람에서의 노을을 뒤로하고, 뱃머리를 돌려 향한 곳은 강변에 있는 한 레스토랑이었다. 낭만적인 분위기 속에서 저녁을 즐기기에 좋았다. 유유히 흐르는 강을 곁에 두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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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조명과 시원한 강바람, 분위기에 걸맞은 음악이 귓가를 간질이는 강변 레스토랑 ‘데 리바 아유타야’는 오늘 하루를 정리하기에는 최고의 식당이었다. 아유타야 로컬 음식과 시원한 맥주에 푹 빠진 채 태국 여행 두 번째 날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Info>

-위치: Pratu Chai Sub-district, Phra Nakhon Si Ayutthaya District, Phra Nakhon Si Ayutthaya 13000
- 전화번호: +66 61 545 8228
- 영업시간: 11:00~14:00 / 16:00~23:00



3일 차 | 방콕 시내 누비기
다시 방콕 시내로. 방콕 시내에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만한 것들이 많다. 정말이지 너무도 많다. 부지런히 다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많은 즐길 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이번이 마지막은 아닐 테니까. 최대한 천천히, 여유롭게 방콕의 공기를 만끽하기로 했다. 방콕에서의 마지막 하루는 그렇게 여행하고 싶었다.

# 레드 로터스 수상시장 (연꽃 정원)

태국은 연중 따뜻한 기후 덕분에 여름철 꽃으로 알려진 연꽃이 일 년 내내 필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물론 한 번에 활짝 피는 건 아닐 테지만. 어쨌든 한겨울에도 연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인생 샷 명소가 방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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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로터스, 그 이름도 빨간 연꽃이라는 뜻의 수상시장이다. 사실 이곳의 수상시장은 주말에만 활기를 띠지만, 시장 앞 연못에서 이루어지는 드론 사진 촬영 프로그램은 언제나 인기다. 현지인의 말에 따르자면, 최근 태국 내 소셜미디어상에서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이 꽤 인기를 끌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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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찾았다. 유행이라고 하니까. 레드 로터스 수상시장 내 업체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나룻배를 타고 연못 한가운데로 나아간 뒤, 드론으로 여러 설정 사진을 촬영해주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꽃이 예쁘게 피어난 자리를 골라 자리를 잡으면 드론이 날아오는데, 방향과 각도에 따라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재미있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일행과 함께 사진을 남기고 싶다면 미리 포즈를 상의해두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나는 혼자 찍기로 했다. 어떤 포즈를 취할 것인지 대략 고민은 했지만, 사진이 잘 나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있었다. 원래 카메라를 드는 사람들이 으레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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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연못으로 나아갔고, 자리를 잡았다. 혼자 찍는데 무슨 청승인가 싶어서 소품도 딱히 들고 타지 않았다. 드론이 날아와 정면에서 몇 번, 상공에서 몇 번 나를 향해 사진을 찍었다. 혼자 여러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게 살짝 뻘쭘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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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선착장으로 돌아가자 서른 장 남짓의 사진이 내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 많았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진들은 대부분 내가 포즈를 제대로 취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직원은 원하는 사진과 영상을 고르면 이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혹시나 해서 에어드롭(air drop, 애플 기기 사이에서의 근거리 통신 방식)을 통해 전부 받아 갈 수 있냐고 묻자, 직원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진을 보내주었다(영상은 용량 문제로 어렵다고). 오랜만에 인생 사진을 건졌다.


<Info>

- 위치: หมู่ที่ 6 10/2 Kan Prapa Nakhon Luang Rd, Bang Len, Bang Len District, Nakhon Pathom 73130
- 전화번호: +66 81 259 7667
- 영업시간: 08:00~18:00
- 드론 사진 촬영 요금: 나룻배 탑승 1인 100바트, 드론 사진 촬영 1장에 40바트, 30여 장 촬영해주는 패키지 300바트 / 전통 모자 대여 5바트, 전통 우산 대여 20바트, 타이 전통 드레스 대여 350바트
- 팁: 연꽃 특성상 이른 아침에 봉우리를 펼쳤다가, 10시 이후에 다시 접기 시작한다. 아침 일찍 가는 편이 더 예쁜 사진을 담을 수 있다.


# 딸랏 노이
라마 1세가 방콕에 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딸랏 노이에는 중국인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라마 1세가 차이나타운으로 지정한 구역과 인접한 이곳에서 중국인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생활 양식과 문화를 발전시켰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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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100여 년 전에 지어졌던 중국풍의 건축물과 사찰이 왠지 모르게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1년 전에 처음 방문했을 때 이 동네의 거친 매력에 빠져들었던 전적이 있기에, 이번에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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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처럼 이어지는 골목길을 따라 심심찮게 벽화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대로인 것도, 새롭게 그려진 것도 있었다. 어딜 가나 포토존이었다. 방치되어 있었던 창고들은 카페로, 펍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세상에, 더 마음에 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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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다 못해 버려진 듯한 오렌지색 피아트 500은 여전히 자리를 지킨 채 딸랏 노이 최고의 명물이 되어 있었다. 짜오프라야강을 바라보며, 혹은 골목 한구석의 인더스트리얼한 분위기를 느끼며 딸랏 노이의 독특한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오늘 새벽에 비행기를 타러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싶었을 정도로.


<Info>

- 위치: 22 ซอย เจริญกรุง Talat Noi, Samphanthawong, Bangkok 10100


# 차이나타운

딸랏 노이를 벗어나 차이나타운으로 들어서는 순간, 마치 중국의 대도시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풍경이 펼쳐졌다. 수많은 차량과 사람이 오가고, 어디에 눈을 두어도 북적거리는 인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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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길을 따라 거닐기로 했다. 사람에 치이고, 자전거에 치이고, 오토바이에 치이는데도 왠지 싫지만은 않았다. 차이나타운에 점차 녹아들고 있었던 셈이다. 무심한 듯 물건을 정돈하던 상인들이 손님이 찾아오자 금세 밝은 표정으로 상품을 설명하는 모습이나 단골에게 에누리와 덤까지 얹어주는 듯한 모습은 이곳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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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골목 안으로 들어서서 태국의 차이나타운을 오롯이 담아 가기에는 시간이 조금 모자랐기에, 아쉽게 그냥 지나치는 수준으로 끝나고 말았다. 요즘 차이나타운의 펍이나 바가 그렇게 힙하다고들 하던데,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Info>

- 위치: 436 Yaowarat Rd, Samphanthawong, Bangkok 10100


# 왓 포와 왓 아룬

아무리 출국 일이더라도 태국을 상징하는 방콕의 두 사원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왓 포와 왓 아룬을 차례로 둘러보기로 했다. 먼저 찾아간 곳은 왓 포. 여기는 라마 1세 때 만들어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사원이다. 선대 왕을 모시는 불탑 여러 기가 서 있으며, 거대한 황금 와불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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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는데, 태국 마사지의 발상지가 이곳이라는 점이다. 오랜 옛날부터 태국 마사지를 가르치는 아카데미가 운영 중인 것. 그러고 보니 곳곳에서 마사지의 한 동작을 상징하는 조각상들도 사원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마사지를 받을 수도 있단다. 태국 마사지의 중심지가 여기라니. 마사지를 만들어 보급했다는 사실에 소소한 감사를 표했다. 마사지 없는 세상이라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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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포를 둘러본 후에는 왓 아룬으로 향했다. 근처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짜오프라야 강을 건넜다. 왓 아룬은 ‘새벽 사원’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을 정도로 해가 떠오르기 직전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알려진 곳이다.

그런데 굳이 새벽일 필요는 없었다. 왓 포에서 강을 건너며 마주하는 오후의 왓 아룬 풍경도 환상적이었으니까. 물론 새벽의 모습이 궁금해지기는 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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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불탑은 도자기 재질의 장식으로 꾸며져 있어, 새벽이 아니더라도 늘 반짝이며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마침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이번 태국 여행에서만 사원을 배경으로 보는 두 번째 노을이었다. 짧은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Info 왓 포>

- 위치: 2 Sanam Chai Rd, Phra Borom Maha Ratchawang, Phra Nakhon, Bangkok 10200
- 전화번호: +66 2 226 0335
- 운영시간: 08:30~18:30 / 연중무휴 - 관람요금: 200바트 / 1인

<Info 왓 아룬>

- 위치: 158 Thanon Wang Doem, Wat Arun, Bangkok Yai, Bangkok 10600
- 전화번호: +66 2 891 2185
- 관람요금: 50바트 / 1인


# 딸랏 롯빠이 2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딸랏 롯빠이2. 방콕에서 가장 대표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야시장의 두 번째 지점이다. 그런데 웬걸. 첫 번째, 그러니까 오리지널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몰린다. 시내에 자리하고 있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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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핫한 야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인파가 몰리고 있었다. 아무렴 뭐 어떠하랴. 이게 방콕의 매력인 것을.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먹거리 노점이 촘촘히 모여 불을 밝힌 풍경을 감상하며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휩쓸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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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딸랏 롯빠이2에서 이번 태국 여행 마지막 만찬을 즐겨보겠노라 결심했다.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말 그대로 눈앞에 ‘쏟아’내는(정말 테이블 위에 요리를 쏟는다) 해산물 플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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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해산물을 모아 양념으로 버무린 요리였는데, 많이 먹지 못할 것이라는 기우 탓에 작은 사이즈를 주문했던 것이 실패 요인이었다. 앞으로 언제 또 방콕에 올 것인지 알 수 없는데, 겨우 이 정도뿐이라니. 두고두고 아쉬웠을 정도로 훌륭한 선택이었다. 방콕을 다시 한번 방문할 핑계가 되겠다며 위안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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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메뉴를 찾아 이동하는 우리 모습은 흡사 하이에나 같았다. 눈에 불을 켜고 어느 식당에서 어떤 음식을 즐길 것인지를 살폈다. 비주얼만으로도 테이블 위 모두를 압도하는 등뼈 찜이 간택 받았다. 그렇게 딸랏 롯빠이에서의 만찬이 끝을 맺었다. 솜땀이나 팟타이, 쌀국수 등 간단한 태국 요리들도 눈에 밟혔으나,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Info>

- 위치: Ratchadaphisek Rd, Din Daeng, Bangkok 10400
- 전화번호: +66 92 713 5599
- 영업시간: 17:00~01:00 / 연중무휴
- 팁: 딸랏 롯빠이2 야시장 옆 에스플라네이드 쇼핑몰 주차장에서 야경을 감상해보자. 4층 이상에서 봐야 더 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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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을
김노을

21세기형 한량 DNA 보유자. 여행하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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